성탄시기

 *역 사

*현행 전례 제도

*성탄의 의미

*구유 예절

*예수성탄대축일

*구유자료실

    1.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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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다림 끝에 이제 예수님의 성탄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대림시기가  구제주의 탄생을 준비하는 기간이라면 성탄시기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사람이 되시어 이세상에 오심을 기념하는 시기로서, 예수 성탄 대축일 전야부터

주임 공현 대축일 주간 또는 주님 세례축일 까지이다. 그리스도 탄생으로 온 인류의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에서

이 시기에 사제는, 어둠을 물리치고 새 생명과 새로운 광명이 떠오름을 찬미하며, 기쁨과 결백을 상징하는 백색 제의를

입는다. 성탄 시기는 4세기 중반부터 보편적으로 지내게 되는데,대림시기가 사순시기 관습을 본받아 생긴 것처럼

성탄시기 역시 부활시기를 모방한 기간으로서, 특별한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지 않다.  

이 시기는 예수 성탄과 주님 공현의 역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예수 성탄 대축일'은 예수님께서 2천년 전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사건을 기념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다. 예수님의 탄생일에 대해서는 복음서도 아무런 자료를 제공하지 않으며, 초세기의

문헌에서도 일체 언급이 없다. 12월 25일을 예수 성탄 축일로 지낸  사실을 처음으로 언급한 자료는 354년에 로마에서

기록된 연대기이다. 이 책은 12월 25일을 로마 제국의 축일인 무적의 태양신 탄일(Nativitas Solisinvicti)이라 부르고

335-337년에 로마에서 예수 성탄 축일을 지냈음을 암시하고 있다. 무적의 태양신 탄일은 275년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완공한  태양신전 축성식을 기회로 12월 25일로 지정하였다.

4세기 초엽에 도입된 예수 성탄 축일이 태양신 축일과 같은 이유는 아마도 이 날이 세상의 빛(요한 8,12)이시며 정의의

태양(말라 3,20)이신 예수님의 축일로 지내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정확한 역사적 배경은 아직 잘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후 4세기 말엽이나 5세기 초엽에 이 축일은 동방교회에도

전파되었다. 7세기 경에는 성탄 한주간 뒤인 1월 1일을 성탄 제 8일 축일로 지내기 사작하였는데, 이날에는 천주의 모친

마리아의 탄생도 함께 기념하였다.  

같은 7세기에 성탄 축일은 성탄 팔일 축제로  확장되었는데 무엇보다도 부활과  성령강림 팔일 축제의 영향이 컸다.

한편 동방에서는 서방보다 조금 먼저 1월 6일을 주님 공현 축일로 지내기 시작하여 동방교회의 성탄 축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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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현행 전례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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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시기는 예수 성탄 전날인 12월 24일의 제1저녁기도 또는 예수 성탄 전야 미사부터 시작하여

주님 공현주일 다음주일인 주님 세례 주일까지 계속된다.  그 기간은 약 2주간으로 부활 축제기간인

부활시기보다 훨씬 짧다.

교회는 성탄 대축일을 12월 25일 하루만 지내지 않고 다음 해 1월 1일까지 한 주간 동안 계속되는 팔일 축제를 지낸다.

이 팔일 축제는 부활 팔일 축제와 함께 전례주년의 2대 팔일 축제이다. 따라서 이 기간은 성탄 본날을 한 주간 더 연장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이 기간은 성탄 본날을 한 주간 더 연장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부활 팔일 축제는 대축일임에 비해 성탄 팔일 축제는 한 등급 낮은 축일에 속한다. 또 사실상 이 축제기간의

대부분은 성인 축일로 구성되어 있다.  순수한 팔일 축제일은 12월 29-31일 사흘뿐이다. 

그러나 다른 날에도 성탄 감사송을 바치는 등으로 축제 전례는 계속된다.

     1)  팔일 축제 중의 주일, 주일이 없으면 12월 30일 :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2) 성탄 다음 날인 12월 26일 : 성 스테파노 츳 순교자 축일.

     3) 12월 27일 :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4) 12월 28일 :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

     5) 1월 1일 : 팔일  축제의 마지막 날이자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6) 1월 2일과 5일 사이의 주일 : 성탄 제 2주일.한국 교회에서는 이날을 주님 공현 대축일로 지냄.  

     7)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 주일 : 성탄시기를 마감하는 주님 세례 축일.

         이 축일 다음 날인 월요일부터 연중시기에 들어간다.         

성탄시기는 축제 기간이기 때문에 성탄 전야 미사부터 백색 제의를 사용하며 (성 스테파노축일과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은 순교자 축일이기 때문에 홍색 제의 사용), 대림시기 중에 중단했던 대영광송을 노래한다.

특히 성탄 대축일의 모든 미사 중에 신앙 고백문을 외우거나 노래하는데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부분에서는

다른 날보다 특별히 고개를 깊이 숙인다. 성탄 본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 성탄, 천주의 성모 마리아, 주님 공현,

주님 세례 등의 축일과 성인 축일 미사 외에 이 기간의 미사 제1독서는 요한 1서이다.  요한 1서를 사용하는 이유는

요한 1서가 성탄과 공현의  신비를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의 표현으로 선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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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성탄의 의미

예수 성탄 대축일은 천주 성자께서 동정 마리아 태중에서 혈육을 취하여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탄생하였음을 경축하는

날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성탄 축일에 예수님의 성탄과 밀접한 목동들의 방문, 동방 박사의 조배, 헤로데의 어린이 살해

등의 사건도 함께 기념하였다.  그런데 라틴어의 '성탄(Nativitas)'은 이러한 생일의 의미 외에 신들이나 통치자가

공적으로 모습을 드러냄, 영광을 받음, 신이 됨(epiphaneia, theophaneia) 등의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를테면 고대 그리스나 로마 제국에서는 황제의 즉위일을 그가 신이 된 날로, 황제가 어느 도시를 공식 방문하면 신이

당신 모습을 드러낸 날로 기념하곤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서방교회의 성탄 축일은 동방교회의 공현 축일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 날로 간주되었다.

단지 서방에서는 예수님의 역사적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 축일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반면 동방에서는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신 공현 축일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어디에 더 비중을 크게 두든지 성탄 축일은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비천하고 연약한 인간으로

태어나신 날이고, 그럼으로써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의 위대한 능력을 보여주신 날이다.

하느님께서 비천한 인간이 되신 궁극적인 목적은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키고 인류를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여기에 또 다른 성탄의 신비가 있다.  곧 하느님께서는 당산의 지존하신 본성을 더없이 낮추시어 죄와 고통과

죽음의 본성을 지닌 인간이 되시어 인간이 하느님과 화해하고 그분의 자녀가 되는 터전을 마련하셨다.  그래서 성탄을

하느님과 인간의 '기묘한 교환'이라고도 한다.  

이 기묘한 교환은 성탄과 부활의 깊은 관계를 들어낸다.  예수님께서는 탄생과 더불어 당신의 지상 생활의 목적인

십자가와 수난을 통한 부활의 여정을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탄 축일과 공현 축일은 파스카 여정의

준비이자 시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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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구유 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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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유는 어린이와 어른 할것없이 모든 이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하느님께서 구유에 누워계신다. 그 주위에는 나귀도 있고 소도 양도 있다. 이 모습은 하느님께서

두려운 분이 아니시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하느님을 보는 이는 정겨움과

사랑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성탄을 묘사하는 그림들은 이미 카타콤바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석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후대의 예술가들이 구유를 어떻게 꾸몄든지 그것은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데에 초점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이다. 중세기의 많은 성화들 안에서

예수님의 성탄을 묘사하는 장면들을 볼 수 있지만 가장 잘 알려진 구유의 증거는 성 프란치스코가

그레쵸(Greccio: 이탈리아의 동네 이름)에 만든 것이다.  

그는 예수님 탄생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했다. 성 프란치스코는 여기에서 미사를 드리고 강론을 했다.

구유와 성화로 예수님 탄생의 현장을 재현해 놓고 거기에서 미사를 드리는 관습이 중세기의 신심과 연결되어 빠르게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이 장면을 바라보는 이는 단순히 구유의 아름다움만을 감상하며 흐뭇해 하는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신 비를 믿음으로 깨닫고 그 신비에 젖어들어야 한다

  <시작 전 해설>

    시작 성가는 가톨릭성가 91번 "구세주 빨리 오사"입니다.

  <시작 예식>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 천주 성부와 보이지 않는 천주의 형상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 또한 사제와 함께

  <말씀 전례>

    제 1독서 ; 창세기 3, 8-15

        날이 저물어 선들바람이 불 때 야훼 하느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는 야훼
     하느님 눈에 뜨이지 않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부르셨다.
     "너 어디 있느냐?" 아담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따 먹지 말라고 일러 둔 나무 열매를 네가
     따먹었구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담은 핑계를 대었다. "당신께서 저에게 짝지어 주신 여자가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 주기에 먹었을 따름입니다." 야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물으셨다. "어쩌다가 이런
     일을 했느냐?" 여자도 핑계를 대었다. "뱀에게 속아서 따 먹었습니다." 야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온갖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서 너는 저주를 받아, 죽기까지 배로 기어 다니며
     흙을 먹어야 하리라. 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

    화답송 ; 성가 99번

    제 2독서 ; 갈라디아서 4, 1-7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상속자는 모든 재산의 주인이지만 그가 어릴 때는 종이나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버지가 정해 둔 때가 올 때까지 보호자와 관리자의 지시를 받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는 자연숭배에 얽매여 종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때가 찼을 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시어 율법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을 구원해 내시고 또 우리에게 당신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 속에 당신의 아들의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 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인 것입니다.  

    화답송 ; 성가 101번

    복음 말씀 ; 루가 2, 8-20

        그 근방 들에는 목자들이 밤을 새워가며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주님의 영광의 빛이 그들에게
     두루 비치면서 주님의 천사가 나타났다. 목자들이 겁에 질려 떠는 것을 보고 천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모든 백성들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이다.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한 갓난 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바로 그분을 알아 보는 표이다" 하고
     말하였다.
     이 때에 갑자기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그 천사와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천사들이 목자들을 떠나 하늘로 돌아 간 뒤에
     목자들은 서로 "어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사실을 보자" 하면서 곧 달려 가
     보았더니 마리아와 요셉이 있었고 과연 그 아기는 구유에 누워 있었다. 아기를 본 목자들이 사람들에게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이야기하였더니 목자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 일을 신기하게 생각하였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 깊이 새겨 오래 간직하였다. 목자들은 자기들이 듣고 보고 한 것이
     천사들에게 들은 바와 같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돌아 갔다.

    복음 낭독 후 잠시 묵상

    묵상 후 성가 ; 성가 102번

    축복의 기도

        성부여, 찬미 받으소서.  주는 당신의 성자를 세상에 보내시어, 동정의 손상 없이 마리아 몸에서 인성을
     취하시고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고 죄 외에 모든 점에 있어서 우리와 같아짐으로써 우리의 맏형이 되게
     하셨나이다. 그리스도안에서 성덕의 최고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으니, 교회는 어린 그리스도를
     경배하며 요람의 허약한 어린이 안에서 전능하신 천주를 알아 흠숭 하오며, 그의 얼굴을 바라볼 때에
     당신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뵈오며 그의 입에서 생명의 말씀을 들을 때에 당신의 지혜를 가득히 받나이다.
     그러므로 주여 간절히 비오니,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며 경배하는 신자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스스로 현세의 인간상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언젠가는 천상의 인간상을 갖출 수
     있게 하소서. 성부여, 당신의 성자를 신자들에게 당신께로 나아가는  길이 되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비추는 진리가 되게 하시며 살고 자라는 생명이 되게 하소서.  또한 인생 여정의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되게 하시고, 지쳤을 때에 앉아 쉴 수 있는 바위가 되게 하시며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문이 되게 하소서.
     주님은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주례사제와 복사들이 먼저 경배하고 이어서 모든 신자들이 구유 경배 예절을 한다.

(경배 예절이 끝날 때까지 성가를 부른다.   특별헌금도 이때 봉헌한다.)

 예절이 다 끝나면 사제와 복사들이 중앙 통로로 입당하면서 미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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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예수 성탄 대축일[12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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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례

예수 성탄 대축일 전례는 4대의 미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모든 미사의 기도, 독서, 노래, 감사송 등을

합치면 경문이 44개나 된다.  먼저 이 전례는 12월 24일의 전야 미사부터 시작한다.

24일의 아침 미사만 하더라도. 대림시기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반해 전야 미사의 미사경문은 이미 성탄에 관련된

주제나 의미를 반영하고 있다.  본기도는 아직도 '해마다 우리 구원의 축제일을 기다리는"이라고 말하지만 예물기도나

영성체후 기도는 성자의 성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축제 미사는 밤미사부터 시작한다.

 서방 교회는 예수 성탄 대축일을 파스카의 성삼일 다음으로 가장 성스럽게 지낸다.  이날에는 파스카의 성야 예식과

같은 특별 전례 행사는 없고 그 대신에 대 그레고리오 교황(+604) 이래 축일 미사를 밤중 미사와 새벽 미사 및 낮 미사

등 세 번 거행한다.  이렇게 이날의 전례는 미사가 중심이며 절정이다.  크리스마스라는 말도 성대한 성탄 밤 미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모든 사제는 이날 예외적으로 혼자 또는 공동 집전으로 세 미사를 다 거행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처럼 세 미사를 다 드려야 할 의무는 없다.  미사 예물은 예외적으로 세 대 다 받을 수 있다

   

  <밤 미사(missa in nocte)>

   이 미사는 5세기에 도입되었으며, 미사 경문과 독서는 모두 그리스도의 베들레헴 탄생의 신비와      

   기쁨을 드러낸다.

     입당송(시편 2,7) : "나에게 이르시는 주님의 말씀, '너는 내 아들, 오늘 너를 낳았노라."
     이 노래는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하느님의 선언문과 같다.  원래 이 시편은 이스라엘의 임금 즉위식 때에
     부르던 군왕시편으로서 임금이 되면 하느님의 양자가 됨을 알리는 말이었다.  그러나 탄생하신 예수님은 
     하느님의 양자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대영광송 : 대림시기에는 경건한 마음으로 지내기 위하여 부르지 않던 대영광송은 축제의기쁨을 나타내는
     노래이다.  이 노래는 성탄 축제가 시작되는 전야 미사 중에 부르기 시작하지만 전야 유명무실하기 때문에 
     밤 미사에서 그 가치를 발휘한다.  이 노래의 첫 구절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때에 천사들이 목동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서 부른 노래(루가 2,14)이기 때문에 초기(4세기 중엽)에는 교황이 집전하는 성탄미사에만 불렀다.
     그만큼 성탄 미사에 알맞은 노래이다.  흔히 대부분의 본당에서는 축제의장엄성을 드러낸다는 명목으로 이
     노래를 성가대만 부르는데 이것은 분명 그릇된 관습이다. 공동체 전체가기쁨에넘치는 마음으로 환호하듯이
     불러야 노래의 의미를 살린다.

 

    본기도 : "찬란한 빛으로 이 거룩한 밤을 밝혀주신 하느님, 세상에서 이 빛의 신비를 깨달은 저희가 천국에서
     그 빛의 기쁨도 누리게 하소서." 이 기도는 세상의 어둠을 밝히러 오신 예수님의 탄생 의미를 밝힌다. 구약성서는
     너무나도 자주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를 빛으로 묘사한다.  빛은 눈에 보이는 하느님의 찬란한 영광의 광채이자(시편
     103,1-2) 인간을 고통과 죽음과 악에서 해방시키는 표지이다 (미가 3,20). 빛은 또한 하느님께서 비추시는
     생명이며(욥기 29,2-3), 인간에게 기쁨과 행복과 은총을 내리시는 비이다(호세 6,3).  이제 참 태양이며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어모든사람을 비추시고(요한 1,9) 우리를 빛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빛의 자녀답게 살아 영원한 빛의 나라로 가야 한다. 이 빛의 주제는 제 1독서(이사 9,1-6)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화답송 : 제1독서는 아시리아의 침입 위협을 받고 있던 유다 백성에게 빛(1절)과 기쁨(2절)과 해방(4절), 그리고
     무엇보다도 초인간적인 능력과 이름을 지닌 한 아기의 탄생(5-6절)을 예고한다. 화답송(시편 95,1-3.11-13)은
     이러한 예언이 구세주의 탄생으로 실현되었음을 찬양하고 환호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새로운 노래를 주님께
     불러드려라. 온 누리여, 주님께 노래불러라. 그 이름을찬미하여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도움으로 에집트를
     탈출하고 기적적으로 갈대바다를 건넌 다음 모세는 하느님의 위대한 구원 업적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출애 15장).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 귀양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을때에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를 힘이 없었다. "우리 어찌
     주님의 노래를 남의 나라 땅에서 부를수 있으랴"(시편136,4). 이러한 그들에게 이사야는 유배지에서의 해방과
     새로운 노래를 예고하였다."주님께서 구해내신 이들이 돌아오리이다. 환호소리와 함께 시온으로들어서리이다"
     (이사51,11). 이러한 예언이 이제 아기 예수님의 탄생으로 이루어졌기에 교회는 온 세상에게 주님을 찬양하는
     새로운 노래를 부르라고 초대한다.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동식물에게 기뻐하고 환호하라고 외친다.
     주님께서 세상을 다스리러 오셨기 때문이다.성탄 밤에 부르는 이 화답시편은 대영광송과 더불어 가장 기쁘고
     즐거운 축제 성가라 할 수 있다.

 

    복음 환호송(루가 2,10-11) : "너희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전하나니, 우리구세주이신 주그리스도께서
    오늘 태어나셨도다."  이 노래는 천사가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전한 구세주의 탄생에 대한 소식이다. 천사는 
    목자들을 통하여 전 인류에게 처음으로 예수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그런면에서 이 환호송은 입당송과
    같이 하느님의 탄생을 알리는 성대한 선언이자 선포이다.

 

    예물기도 : "주님, 오늘 이 축제의 예물을 기꺼이 받아들이소서.  인간의 본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과 결합
     되었사오니, 저희가 이 거룩한 제사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을 수 있게 하소서."  하느님께서는 매일의 양식인
     빵과 포도주을 주셨다.  우리는 예물 준비 예식 때에 이 선물을 주님께 도로 바치며 주님의 몸과 피로 축성하여
     달라고 청한다.  주님과 주고받는 거룩한 교환을 한다.  예물기도는 이러한 교환이 이 성탄 날에는 더욱 의미가
     깊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시어 인성에 참여하셨으니 우리도 제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게 하여 달라고 청한다.

 

    영성체송(요한 1,14) : "말씀이 사람이 되셨으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도다." 말씀이 인간의 살을 취하여
     인간이 되셨기에 인류는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성체는 바로 이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살이다.
     이러한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우리는 마리아와 요셉처럼 독생 성자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 그 영광에 참여한다.

    영성체후 기도 : "주 하느님, 해마다 우리 구세주의 성탄을 기쁘게 지내는 저희가 현세를 거룩히 살아, 마침내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는 행복에 이르게 하소서."  이 기도는 예물기도와 영성체송을 종합하여 반복하면서 성탄과
     영성체의 은총이 일상 생활에도 이어져 주님과의 완전한 일치에 도달하게 하여 달라고 청한다. 전례는 하느님과
     사람이 서로 주고받아 하나가 되는 성탄의 신비를 성탄을 통하여 신비롭게 재현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례가 단순한
     축제 행사로 끝나면 그 의미와 가치는 반감된다.  주님과 우리의 기묘한 교환은 매일의 삶 속에서도 그대로 이어져야
     한다.그럴 때에만 우리는 마침내 주님과의 완전 일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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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제1독서 : 이사 9, 1-6

 이사 9,1-6은 교회 안에서 전통적으로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 이해되는 텍스트이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다."(5절)는 성탄 전례에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본문은 용어, 주제, 전승, 구원 약속 등을 볼 때에 유배

이후 시대에 쓰여졌음이 분명하다.  유배 이후에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한 종말적 메시아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 이 사실을 뒷받침 해 준다.  저자는 미래의 메시아에 대한 예고로 동시대의 청중과

독자들에게 현재의 어둠이 자나고 빛이 다가오리라고 그들을 위로하며 격려한다.

  <하느님 아들의 탄생 예고(1-6절)>

   빛과 어둠의 대립이 1절의 주제를 이룬다.  종말 때의 하느님의 행위는 창조 사건과 비교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 혼돈의 상태로부터 우주의 질서를 창조하셨듯이(창세 1,2-3 참조), 현재 혼돈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새롭게 바꾸어 주실 것이다.  이사 42,6-7;49,9;  시편 107,10-14에 의하면 "어둠 속을 헤매는 이들"은 유배
   시기를 살고 있는 정치적 포로들을 가리킨다.  '빛을 본다'는 말은 '살다'를 뜻한다.
   1절의 내용이 기본적으로 정치적 해방을 생각하게 하지만, 현재 상태의 근본적인 변화도 생각할 수 있다.
   현재 곤경 속에 놓여 있는 이들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빛, 곧 구원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받는 이들은 마치 추수 때와 같은 즐거움과 전리품을 나눌 때와 같은 기쁨을 체험할 것이다.  물론 추수의
   기쁨은 힘들여 농사를 지은 다음에 맛볼 수 있고 전리품은 심한 전추에서 승리한 다음에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생 끝에 이룬 추수나 전리품은 미래를 보장해    준다.굶주림과 적의 침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평화로운 삶의 조건이 보장되는 것이다.
   죽음과 같은 곤경 속에 있는 이들에게 생명과 기쁨이 주어지는 이유가 3-5ㄱ 절에서 설명된다. 세 번에 걸쳐
   히브리어 접속사 '키'로 이유문이 열거된다(주: 공동 번역에는 이유문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았다). 3절의 멍에, 장대,
   혹사하는 자의 채찍은 자유를 잃고 박해를 받으며 강제 노역에 시달리는 백성의 현 상황을 말해준다.
   "미디안을 쳐부수시던 날"은 판관 7장을 암시한다.  기드온이 삼백명의 군인으로 수많은 미디안인을 쳐부수었지만
   실제로 미디안인들을 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분은 주님이시다.  이것이 첫째 이유이다(판관 7,2.22).  그래서
   메시아 시대가 오면 주님의 구원을 새로이 체험하게 도리라고 예언자는 기대하고 있다.
   둘째 이유는 전쟁의 위험이 제거되고 평화가 보장되었기 때문이다(4절).
   셋째 이유는 한 아기가 태어났기 때문이다(5절).  공동 번역에는 "태어날 한 아기"로 출생의 예고로 번역하고
   있으나 원문의 뜻은 이미 이루어진 아기의 출생에 대한 선언이다.  이어서 태어난 아기의 통치에 관해 언급된다
   (5-6절). 이 구절의 배경은 왕위 즉위식에서 찾을 수 있다.  이집트의 영향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위 즉위식에서
   새 왕의 통치가 성공하리라는 축원과 함께 왕의 탄생을 현재화시켜 왕에 대한 기대가 표현되었던 것이다.
   즉위식에서 사용된 이 표현을 예언자가 메시아의 탄생과 그분의 통치에 대한 예고에 사용하고 있다.
   '그의 어깨에 주권이 메어진다'는 말은 즉위식 때 왕권의 상징인 왕홀이 왕의 어깨에 놓여지는 것을 가리킨다.
   메시아 - 왕에게는 네 개의 이름이 따른다.  '경륜가'는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을 가리킨다.
  '탁월한'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펠레'는 '놀라운 일, 기적'을 뜻하는 명사이다.
   이 '펠레'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 곧 구원 행위인데 이 능력이 임금에게 부여된다. '용사이신 하느님'은
   주로 하느님 자신에게 사용되는 칭호이지만 하느님께로부터 용맹의 영을(11,2) 받은 임금에게도 적용된다.
  (에제32,21과 다니11,3 참조).  '영원한 아버지'는 백성과의 관계에 비추어 사용된 호칭이다.  임금은 백성의
   안녕과 행복을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아버지'이며 '영원한'은 임금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평화의 왕'은 정치적 평화뿐만이 아니라 백성의 행복을 책임지는 왕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예언자는
   이러한 임금의 특성을 메시아게게 적용시킨다.
   6절 : 메시아의 왕권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제한이 없다.  메시아가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키는 수단은
  '공정'(히:미쉬팟-공동:법)과 '정의'(히:처다카)이다.   공정과 정의는 많은 예언자들, 특히 아모스의 설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말들이다.  재판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공정'이다.   그리고 '공정'을 통해서
  '정의'가 실천된다.  하느님의 '정의'는 무엇보다 그분의 구원 의지와 행위를 뜻한다.  메시아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드러내고 성취시키는 분이시다.  메시아가 행할 이 모든
   일은 결국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일이다.
   예수님 안에서 이 모든 일이 성취된다. 그분 안에서 어둠이 빛으로 변화되었고, 사람들에 자유와 평화가
   선사되었다.

  <묵상 제안>

  세상의 빛이신 메시아 : 어둠은 죽음과 멸망을 상징한다.   이에 비해 빛은 생명과 구원을 상징한다.
  이 생명과 구원이 아기의 모습으로 인류 가운데에 오시는 메시아 안에서 충만하게 실현된다.  메시아는
  세상의 빛으로서 해방과 정의와 평화를 가져다주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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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제2독서 : 디도 2, 11-14

  <전체 개관>

  그리스도 신자들이 가지는 신분상의 의무에 대하여 그 개요를 말한다.  경고의 말로 알려진 3,4-7과 표현에
  있어서 아주 비슷하다.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적 증거의 모습을 신학적으로 증명코자하는 저자의 의도가
  교훈적인 어조의 윤리적 가르침들에 잘 나타난다.  Credo의 짧은 요약과 같은 인상을 준다.

  <요점정리>

  바오로는 벌써 2장(디도 2,1-10)에서 노인과 부인, 젊은이 그리고 종들의 의무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당시 헬레니즘의 문학적 양식을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 표현의 대분분이 당시 철학의 주류를
  이루던 스토아(Stoa)  학파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우리 텍스트에 나타난 윤리적 여러 권고들 중 어느
  것도 특별히 '그리스도적'인 것만으로 주장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시면서부터 모든 인간적 가치들은 '그리스도적'이 되었기 때문에(1고린 3,22) 바로 그리스도 신자들이
  구원사건의 이러한 점을 증거해야 한다고 한다.
  바오로는 교회의 사상과 윤리를 그리스도교가 아닌 어느 한 종교의 체험에서도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하느님의 구원을 알리는 데 전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철학적 사고까지도 그리스도 신자에게
  좋은 자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원의 보편성에 대한 바오로 사상의 일면을 여기서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바오로는 하느님의 두 가지 나타남인 그분의 자비와 영광사이에 서 있는 어떤 것으로 교회의 고유한
  윤리성을 보고 있다(2,11-13;3,14).  즉, 그리스도교 윤리는 하느님의 자비와 영광으로 성격 지워지고 그
  체가 바로 세상에 나타난 하느님의 구원을 보이고 있다 한다.  세상이 구원을 믿고 하느님의 최종
  계시(나타나심, 심판)에 희망을 걸게 하는 것도 그리스도 신자의 태도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
  신자의 삶은 죄에 대한 그리스도 피의 승리를, 세상에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다(2,14).  그래서 바오로는
  모든 그리스도 신자에게 선행에 힘쓸 것과 비그리스도 신자들과 잘 지내기를 바란다.  이는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모든 이에게 자신의 자비를 주셧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신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 사랑의 표지가 된다는 이유 때문에 교만에 빠져서는 안된다고도 한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우리가 무슨 올바른 일을 해서가 아니고 오직 하느님께서 자비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는 먼저 세례성사를 받은 신자들을 통해서 나타난다.  이들은 예수님의 탄생에 나타난
  구원의 신비를 현실화시키면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탄생을 알린다.  즉 그들이 세례를 통하여 하는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의 상속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이 모든 이에게 나타났다"(2,11)는
  표현이 세례성사를 통하여 구체화되고 있다.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이 나타났다는 말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강생을 생각하게 된다.  보이지 않던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셨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
  하느님 아들의 첫 나타남(탄생)이 그분의 두 번째 나타남(재림)과 긴장 속에 연관되어있기 때문에 주님의
  탄생은 모든 그리스도 신자에세 성탄의 복된 분위기만을 알리지 않는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와의 일치된 삶이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한 새로운 그러나 힘든 여정을 알리는 이정표도 된다.(2,12).  이 이정표는 다가올
  '확실한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제사한다:  "위대하신 하느님과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그 복된 희망의 날을 기다리게 해줍니다"(2,13).
  이 기대와 희망 속에서 선행에 열성을 기울여야 할 이유로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바쳐 모든
  죄악에서 우리를 건져내고 깨끗이 씻겨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2,14).  여기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사화에서
  베들레헴 사건만을 따로 떼어서 생각하지 않고 동시에 구원사적 관점과 종말사적 관점을 함께 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적용>

  오늘 독서가 예수님의 탄생을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탄생사건"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구원계시늬 한 결과라는 점에서 그리스도 신자의 삶 안에, 성사적 삶 안에 심지어는 윤리 도덕적 삶 안에서
  이를 보고 있다.  즉 이 "탄생"은 세말에 이르러선 영광 중에 오실 최종 계시가 되겠지만 지금 벌써 성사들
  안에 역사하여 사람들을 새롭게 쇄신시키고 윤리 도덕성 안에서 사람을 구원의 증거자로 만든다.  오늘
  독서는 그리스도 신자의 삶 전체를 종합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즉 독서 안에 성탄의 신비 십자가의 제사
  성사적 생활 그리스도적 증거의 의미 그리고 영광에 대한 희망 등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당시 이스라엘의 꿈란 공동체에선 메시아에게서 두 가지 모습을 보았다.하나는 아아론 가문의 사제적
  메시아상이었고, 다른 또 하나는 다윗 가문의 왕적 메시아상이었다.  비슷한 현상을 우리는 신약성서의 예수
  탄생사화에서도 발견한다.  성모님(루가 1,5.36)과 요셉(마태 1,25; 루가 2,22; 이사 43,1; 시편 2,7)과
  연관해서 나자렛 예수님 안에 두 메시아상을 함께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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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복음 : 루가 2, 1-14; 루가 2, 15-20

 루가 2,1-20은 예수님의 탄생기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2,1-5: 예수님 탄생의 때와 장소, 6-7절:

 예수님의 탄생, 8-20절: 목자들의 이야기이다.  전례력에 따르면 성탄 밤 미사의 복음으로 2,1-14까지를

 읽고, 성탄 새벽 미사의 복음으로는 2,15-20까지를 읽는다.  성탄 밤 미사 복음의 핵심은 메시아 탄생과

 목자들에게 그 소식을 선포한 것이고, 새벽 미사 복음의 핵심은 목자들이 소식을 듣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오는 것이다.

  <구세주의 탄생과 선포>

   마태오 복음이나 루가 복음은 각각 처음의 두 장에서 예수님의 유아기를 전한다.  각 복음서의 첫 장들은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전하고 있다.  그 다음 두 번째 장에서 베들레헴에서의 탄생을 전한 후 이야기의 초점을 각각의
   복음서에서 메시아 탄생을 청중에게 선포하는데주력하고 있다. 마태오에서는 이방인 박사들에게 선포되고,
   루가에서는 유대인 목자들에게 선포되고 있다. 이들은 제각기 계시에 따라 베들레헴에 당도하게 되어 거기서 부모와
   함께있는 아기를 발견하게 된다. 각 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태어나신 아기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기다려온 구세주, 메시아라는 것이다.
   오늘 루가 복음은 먼저1-5절에서 인구 조사로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이동한 사실을 전하고, 이어 6-7절에서는
   그곳에 머무는 동안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았고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누였다고 저한다. 8-14절에서는 이 기쁜 소식이
   천사에 의해 목자들에게 선포된다. 이어지는 15-20절은 목자들이 그 소식을듣고 찾아와 아기 예수님을 발견하게 됨을
   전하는데 이것은 새벽 미사의 복음으로 듣게 될 것이다.

  <탄생지 베들레헴>

 루가는 마리아와 요셉이 나자렛에 살고 있었다고 믿었다(2,39에서 나자렛을 '자기 고향'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들이 나자렛에서 베들레헴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인구 조사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했고, 드디어 아기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게 된 것이다. 반면 마태오는 마리아와 요셉의 집에 아예 베들레헴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고(2,11) 차라리 그들이 이집트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나자렛으로 이사하여 살게 된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2,22-23). 비록 로마 인구 조사의 역사성에 대한 문제와 부정확한 점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루가는 예수님의 탄생을 역사적 사실로서 기술한 것이 아니라 기쁜 소식(복음)의 선포로 려겼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루가의 신학적 풍요로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루가는 로마의 인구 조사라는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탄생이 "모든 백성들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10절), 즉 세계적 사건으로 묘사했다.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은 구세주로서 이 세상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시라는 것이다.

  <첫아들(2,7)>

그들이 베들레헴에 머물러 있는 동안 마리아는 달이 차서 드디어 "첫아들"을 낳았다.이스라엘 전통상 처음으로 아들을 얻으면 그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하느님의 소유로 여겼다. 그래서 그 아들을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 여기서 "첫아들"이라는 말은 처음으로 낳은 사내아이는 하느님께 바치라는 율법을 되새기는 말이다(출애 13,12;34,19; 참조 : 루가 2,23).첫아들은 또한 상자 상속권을 갖는다(참조 : 창세 25,29). 외아들도 그런 의미에서는 첫아들이다. 예수님의 경우 첫 아들이란 말은 율법에 따라 이 아들이 다윗의 왕자를 계승할 권리가 있다는 뜻을 강조하는 것이지 마리아가 그후 다른 자녀들을 두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구유, 포대기>

  "여관에는 그들이 머무를 방이 없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혔다"(2,7). '구유', '포대기'에 대해서 루가 복음사가의 의도와는 달리 많은 해석이 있었고 해마다 강론 소재에 이것들이 등장했다. 예루살렘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왔기 때문에 '자리'가 없었다거나, 예수님의 부모님의 미력함에서 오는 고충, 심지어 여관 주인이 잔학하고 불친절했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있을 정도였다. 또 전통적으로 구유와 포대기는 위대한 메시아가 비천아게 태어나셨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지만 이런 해석은 이 구절을 성서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중세 후기의 경건한 신심에서 나온 것이다.
  다음과 같은 구약성서 두 구절이 루가의 본래 의도를 밝혀 줄 것이다:
  ① 첫째 구절은 이사 1장 3절이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만들어 준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철이 없구나." 뜻인즉 소와 나귀도 제 주인을 알고 제 생명의 양식을 찾을 곳, 즉 요람 혹은 구유를 챙길 줄 아는데 이스라엘은 제 주님의 탄생이라는 기쁜 소식이 목자들에게 전해졌고, 그들이 구유에 누운 아기를 보았다. 목자들은 생명의 근원을 찾은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먼저 목자들이 구유에 누운 아기를 발전하도록 이끌어 주셨고 그들은 주님의 구유를 알아보았다.
  ② 둘째 구절은 지혜 7장 4-5절이다: "나는 기저귀에 싸여서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났다. 왕이라고 해서 유별나게 인생을 시작하지 않는다." 솔로몬이 자기 고백으로 되어있는 이 구절에서 자기가 태어났을 때 기저귀에 싸였다고 말한다. 그는 다윗 왕의 아들, 왕자였다. 그가 태어났을 때 그도 기저귀에 싸였다. 이렇게 볼 때 기저귀(포대기)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의 가난한 상황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왕자, 제왕, 다윗의 아들을 시사하는 말이다.이것을 구약성서 구절로만 볼 것이 아니라 루가가 조명하고자 하는 사건이라는 새로운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보면 예수님의 탄생의 신비에 보다 깊은 통찰과 이해가 생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고을인 베드레헴에서 나셨다. 여관이 아니라 구유에 나심으로써 당신 백성의 기둥이며 생명의 근원인 하느님을 상징한다. 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있다고 해서 그가 왕손의 혈통이라는 점과 모순될 것은 없다. 왕이라 해서 인생을 우별나게 시작하지 않는다.

  <목자>

루가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처음으로 목자에게 전해졌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목자란 과연 어떤 인물들인가?  사람들은 흔히 루가가 묘사한 목자들은 양떼의 유순함을 지닌 이들이며 그래서 성탄절의 상징으로 보기도 했다. 이런 관심사들은 루가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한편 성조들과 다윗이 목자였다는 사실을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1사무 17,15.2834-35; 2사무 7,8; 시편 78,70-72).그러나 목자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는 달리 후기 랍비 문학에서는 종종 목자들을 부정직한 인물로 간주하기도 했다. 그들은 남의 풀밭에 짐승을 풀어놓아 풀을 뜯기는가 하면 주인 몰래 양과 염소의 젖을 내다 팔거나 또는 양털을 팔아먹었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물, 죄인으로 취급받았다.그들은 멸시받는 계층이었다.  목자들에게는 법정에서 증언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가난하고 , 돈도 권력도 배운것도 없는 이 못난 사람들에게 최초로 구원의 메시지가 전달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태어날 적부터 천민을 사랑하셨다는 것을 말하려는 뜻이 엿보인다.  

  <목자들에게 선포된 메시지>

루가 복음에서 목자들에게 선포된 메시지는 두 가지다.  첫째, 구세주 탄생에 관한 선포다:  "두려워 하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모든 백성들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이다.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다"(2,10b-11).  천사의 메시지는 '기쁜 소식'의 선포이며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기쁨'이 될 소식이었다.  천사는 태어나신 예수님을 '구세주', '주님', '그리스도'시라고 하면서 세 가지 존칭을 예수님께 적용한다.  이러한 기쁜 소식은 이스라엘의 희망, 다윗 가문에서 태어날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직결되어 있다.
 미가의 예언에 따르면 베들레헴은 '다윗의 아들'이 태어날 고을이다(5,2-4).  천사는 미가의 예언이 실현되었다고 선포한다.  '오늘'  태어나신 것이다.  루가 복음에서 '오늘'이란 말은 종말론적인 구원의 실현이라는 특별한 여운을 갖고 있다(참조 : 4,21; 19,9; 23,43).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고 해서, 초대 교회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확신했다.
 두 번째 천사의 선포는 첫 번째 것과 성격이 다르다.  선포라기 보다는 차라리 찬송이다.  이 찬송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제자들이 부르짖었던 환호와 형식상으로 같다:  "하늘에는 평화, 하느님께 영광"(19,38),  '영광'은 하느님의 현존하심과 인간을 위해 취하신 강력한 행동을 경험하고 인자함을 의미한다.  '평화'는 전쟁이나 재난이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지고지선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대표한다.  여기서 평화는 하느님께서 당신과 당신의 백성간에 사랑의 관계를 맺으려 하심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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